2026-09-07 온라인뉴스팀

네덜란드 중앙은행(DNB), ‘지정학적 불안(Geopolitical Unrest)’ 공식 명시하며 미국 내 보관 금 준비금 런던으로 대거 재배치

[익스퍼트인사이트 온라인뉴스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간 글로벌 금융 질서의 가장 확고한 초석으로 군림해 왔던 대서양 동맹의 ‘자산 보관 신뢰’가 지정학적 격변과 미국의 금융 무기화 역풍 속에 전례 없는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전통적 금융 선진국이자 미국의 핵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맹방인 네덜란드가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에 위탁 보관해 오던 국가 금 준비금(Gold Reserves)의 상당 부분을 영국 런던으로 전격 이전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중앙은행(De Nederlandsche Bank·DNB)이 이번 자산 재배치의 핵심 사유로 공식 문서와 성명을 통해 ‘지정학적 불안(Geopolitical Unrest)’을 적시하면서, 국제 금융계와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비서방권 국가들을 넘어 서방의 핵심 동맹국들마저 미국의 사법적 관할권(Jurisdiction)과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국의 핵심 주권 자산을 분리·대피시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경제 및 금융 전문 매체 블룸버그(Bloomberg)는 2026년 9월 2일(현지시간) 패트릭 반 오스테롬(Patrick Van Oosterom)과 잭 라이언(Jack Ryan) 기자의 단독 보도를 통해 ‘네덜란드, 지정학적 불안으로 미국에서 런던으로 금 이전(Dutch Shift Gold to London From US on Geopolitical Unrest)’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블룸버그는 네덜란드 통화당국의 공식 발표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DNB가 뉴욕 연은 지하 금고에 장기 보관 중이던 실물 골드바를 대서양을 건너 영국 영란은행(Bank of England) 금고로 이전하는 극비 수송 작전을 완료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는 약 612톤(전 세계 10위권 수준)에 달하는 방대한 금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의 금 강국이다. 과거 냉전 시절 소련의 군사적 침공 위협에 대비해 금 준비금의 대부분을 해외 안전지대인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캐나다 오타와 등에 분산 보관해 왔다. 그러나 2014년 국민적 신뢰 회복과 자산 주권 강화를 명분으로 뉴욕 연은에 있던 금 122톤을 본국 암스테르담으로 전격 환수한 바 있으며,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에 남아 있던 잔여 금 준비금의 상당량마저 미국 밖으로 반출하여 런던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국제 금융 및 지정학 전문가들은 네덜란드가 밝힌 ‘지정학적 불안’이라는 명분의 이면에 미국의 ‘금융 제재 무기화(Weaponization of Finance)’에 대한 깊은 불신과 실존적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미국 주도의 서방 연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를 하룻밤 사이에 전격 동결하고, 나아가 이를 우크라이나 재건 자금으로 전용·몰수하려는 입법을 강행한 사건은 서방 동맹국 내부의 중앙은행 총재들에게도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안겼다. ‘워싱턴의 정책적 판단과 백악관의 행정명령 하나로 타국의 주권 면책 특권이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는 냉혹한 선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국 정계의 급격한 고립주의 회귀 경향과 정권 교체에 따른 통상 마찰, 그리고 미 행정부가 자국의 국내법을 근거로 동맹국 기업과 금융기관에까지 무차별적인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들이대는 사법적 제국주의 행태는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 땅에 자산을 맡겨두는 것 자체가 거대한 잠재적 인질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향후 유럽연합(EU)과 미국 간에 무역 통상이나 기후변화 정책, 안보 분담금을 둘러싸고 파국적인 갈등이 발생할 경우, 미국 관할권 아래 놓인 뉴욕 연은의 금고가 100%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네덜란드가 본국 송환 대신 ‘영국 런던’을 중간 기착지이자 새로운 보관처로 선택한 배경 역시 고도의 실용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런던은 런던금시장연합회(LBMA)를 중심으로 전 세계 장외(OTC) 실물 금 거래의 70% 이상이 청산·결제되는 글로벌 금 유동성의 절대적 심장부다. 영란은행의 지하 금고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하면서도, 유사시 즉각적인 대여(Leasing), 스와프, 현금화 등 고도의 시장 조작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를 제공한다.

결국 네덜란드 중앙은행으로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사법 통제권에서 벗어나 지리적으로 유럽 본토와 인접한 안전지대로 금을 옮겨오는 동시에, 국가 위기 시 즉각적으로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시장 친화적 입지를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자산 분산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최근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탈(脫)미국 금 엑소더스’의 거대한 연쇄 파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파괴력이 더욱 크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이미 2013년부터 2017년에 걸쳐 뉴욕과 파리에 맡겨두었던 금 준비금 수백 톤을 프랑크푸르트 본국 금고로 환수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완수한 바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 역시 해외 위탁분을 전량 정리하고 자국 영토 내에 100% 금을 보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보수적인 금융 운용으로 정평이 난 네덜란드마저 미국 보관 금을 대거 철수시킴으로써, “미국에 금을 맡겨야 안전하다”는 2차 대전 이후의 오랜 불문율은 완전히 사문화되었음이 증명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유럽의 금 이동은 노르웨이 오일펀드(NBIM)의 미국 국채 800억 달러 축소 제안,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 20년 만의 최저치(6,334억 달러) 추락, 그리고 전 세계 중앙은행의 45%가 올해 금 매입 확대를 공식화한 세계금협회(WGC)의 최신 통계와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글로벌 자본과 주권 국가들이 미국의 35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재정 적자, 그리고 정치적 통제 리스크에 직면하여 종이 채권(미 국채)과 달러화 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고, 물리적 실물 자산인 금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로 회수하는 ‘탈달러·금 태환 체제’로의 대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네덜란드의 미국 내 금 철수 및 런던 재배치 사태는, 동맹이라는 외교적 수사 뒤편에서 국가 자산의 생존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글로벌 자본의 냉혹한 셈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안주하던 서방 선진국들조차 워싱턴의 일방주의적 금융 지배력에 대한 리스크 헤지에 돌입한 2026년 오늘날, 신뢰를 잃어가는 법정화폐와 채권 제국의 그늘을 벗어나 ‘물리적 자산 주권’을 되찾으려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조용한 반란은 국제 금융 질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불가역적인 역사적 분곡점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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