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8 잡식한숟갈

이건왕자 글 반응이 좋아서 또 쓰는 글…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일본인, 아내는 우크라이나인, 딸은 입양한 한국인. 그냥 읽어만봐도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인생이다.

조선 마지막황세손 ‘이구’의 이야기다.

영친왕의 둘째아들이고 고종의 장손.

이건이 작위는 승계했지만, 이구가 사촌형이고 장손이므로 족보서열로 따지면 왕위계승 1순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구를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이라고 부른다. 영친왕 이은은 아들 이구를 철저히 일본황족으로 키웠다. 토쿄에서 태어나 일본 귀족들 사이에서 일본귀족교육을 받으며 성인이 되었다. 일본 패망 후 맥아더에 의해 평민으로 강등된 이구는 미MIT로 유학길에 오른다. MIT졸업 후 세계적인 건축가 I. M. Pei의 밑에서 일하던 이구는 줄리아 멀록이라는 우크라이나계 여성과 사랑에 빠져 종친들의 극렬한 반대 속에 결혼을 한다. 나중에는 유제니아 은숙이라고 이름붙여진 딸도 입양한다. 1963년 박정희대통령의 허락으로 대한민국 국적이 살아난 영친왕과 이방자여사가 귀국을 시도한다. 그들은 이구에게도 귀국을 종용한다. 황세손이라지만 사실 그에게 한국은 처음와 본 낯선 곳일 뿐이였다. 일어와 영어는 유창해도 한국말은 서툴렀고, 딱히 한국말을 배우려 노력하지도 않났다. 일본과 미국에서만 생활했던 그에게는 너무나 문화가 달랐기에 한국은 적응하기 쉽지않은 곳이였다.

창덕궁에 거주하며 이런저런 사업들을 시도했지만 사업수완은 그닥 없어서 번번히 실패하였다. 이방자여사와 아내 줄리아의 고부간 갈등도 심해져서 별거 10년 만에 1982년에 정식이혼한다. 사업에 연이어 실패 후 일본으로 돌아갔던 그는 아내와 이혼, 부모님의 연이은 사망으로 외로움에 마음 둘 곳 없이 삶은 황폐화되어가는 불우한 말년이였다. 일부언론은 황세손 이구가 일본인무속녀와 동거한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이카사카프린스호텔 객실에서 홀로 고독사한다. 이카사카프린스호텔은 1931년 그가 태어났던 곳이였다. 저택이 얼마나 컸던지 나중에 호텔로 개조되었던… 이구가 죽자 일본황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 입장에선 엄연히 일본황족의 사망이였기에..그러나 이건하고는 상황이 달랐다. 한국으로 시신이 운구되어 창덕궁에서 장례가 치뤄진다. 그는 창덕궁에 마지막 주인이였다

댓글 남기기

Trending

Expert Insight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