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4 온라인뉴스팀

한경협, 기술 유출 실태 보고서 발표… 미국·EU·일본 수준의 ‘안보 스크리닝’ 도입 시급 | 첨단 전략 기술 보호가 곧 국가 경쟁력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가 소리 없는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첨단 기술들이 해외로 무분별하게 유출되면서, 지난 5년간 발생한 경제적 피해액이 무려 23조 원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진단이 나왔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손실을 넘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제적 내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14일 발표한 ‘국내 기술 유출 실태 및 외국인 투자 심사 제도 개선 방향’ 보고서를 통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발생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적발된 기술 유출 사건은 총 100여 건에 달하며, 유출된 기술의 가치와 이로 인한 매출 손실, 향후 시장 점유율 하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 피해 규모가 최소 23조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기술 유출의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핵심 인력을 직접 매수하거나 물리적인 저장장치를 빼돌리는 고전적인 수법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정상적인 투자’를 가장한 M&A(인수합병)나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합법적으로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국내 유망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한 뒤, 경영권을 확보해 핵심 기술진을 흡수하고 기술 데이터만 본국으로 전송하는 이른바 ‘기술 먹튀’형 투자가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경협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우리 정부의 외국인 투자 심사 제도를 ‘경제 진흥’ 중심에서 ‘국가 안보’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보고서는 미국,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발맞춰 외국인 투자에 대한 ‘안보 스크리닝(Security Screening)’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투자를 대통령 직권으로 금지하거나 철회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핵심 부문에서는 소수 지분 투자라 할지라도 기술 접근권이 부여된다면 철저한 조사를 거친다. 일본 역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기간 인프라와 첨단 기술 공급망에 대한 외국인의 간섭을 차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현행 ‘외국인투자 촉진법’은 여전히 투자 유치와 인센티브 제공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에 대한 M&A 심사 제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심사 대상이 한정적이고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실질적인 기술 유출 방지 문턱으로서의 역할이 미비하다는 평가다.

이에 한경협은 세 가지 핵심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외국인 투자 심사 대상을 국가전략기술 전반으로 확대하고, 단순 지분 취득이라 할지라도 기술 유출 위험이 있다면 심사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둘째, 범부처 합동 ‘산업 안보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정보기관과 산업 부처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셋째,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기술 유출은 곧 국익 훼손’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한 경제학 전문가는 “과거에는 외자 유치가 곧 국익이었으나, 이제는 어떤 자본이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라며, “기술이 곧 국력인 기술 패권 시대에 산업 안보는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기술 유출은 단순히 한 기업의 도산을 넘어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통째로 도난당하는 것과 같다. 반도체 초격차 유지가 국가적 명운인 상황에서 23조 원이라는 수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장이다. 법적·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기업 내부의 보안 시스템 고도화, 그리고 핵심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이 입체적으로 맞물려야만 이 거대한 국부 유출의 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우리가 가진 ‘지적 자산’을 얼마나 철저히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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