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3 김민영 대표
“성교육은
성 지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합니다.”
자주스쿨 김민영 대표는 성교육을 ‘인권’과 ‘관계’의 문제로 바라본다.
16년 넘게 전 생애 성교육을 실천해온 그는 지금 이 시대의 성교육은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성교육이 당연한 문화’가 되는 날까지 그는 오늘도 강단에 선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성교육은 여전히 쉽게 꺼내기엔 조심스러운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이 민감한 주제를 오랜 시간 다뤄오셨는데요. 처음부터 ‘이걸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으셨던 건가요?
20년 전쯤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을 만나며 일하던 당시, 만남이 거듭될수록 느꼈죠. “성교육과 인성교육이 정말 중요하겠구나.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10년 뒤엔 정말 위험한 사회가 될 수 있겠구나.”
저 역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요. 뭔지 몰라도 무조건 나쁜 거고, 절대 입에 올려선 안 되는 것이라 여겼죠.
그런데 성인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죠. 그런데 제가 만나는 청소년들 역시 저와 똑같이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성을 넘어서 관계와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전문가가 되고자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 분야를 공부해왔고, 16년째 강의를 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제 일을 후회하거나 확신이 약해진 적은 없어요.
“성교육은 지식이 아니라,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대표님은 성교육을 단지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인권교육’이라는 말로까지 확장해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성이라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에서의 안전한 거리, 태도, 존중하려는 노력, 나 자신에 대한 인식 등 정말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어요. 그런 개념을 담고 있는 교육이라면 그 역시도 폭넓고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마땅하죠.
단순히 우리 몸에 대한 설명이나 폭력 예방만으로는 성교육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어요. 궁극적으로는 왜 존중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걸 위해 존재를 인식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죠.
그래서 성교육은 아주 깊고 넓은 교육이어야 합니다. 천천히, 자주,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이에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아직 어려서 성교육은 이르다’고 말합니다. 성교육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자연스러울까요?
이 질문을 받으면 늘 이렇게 말씀드려요. “한글이나 숫자는 언제부터 가르치셨나요?” 그러면 대부분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때부터요”라고 대답하시죠. 그런데 실제로 아이가 먼저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친 부모는 거의 없어요.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책이나 포스터를 보여주며 ‘기린’, ‘나비’를 가르치잖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망설임 없이 한글과 숫자를 노출시키죠. 왜냐하면 그것들이 ‘기본 교육’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에요.
성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며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 교육이기 때문에, 태어난 순간부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어야 해요.
“성교육은 조기교육보다
‘적기교육’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즘은 감정 표현, 경계 세우기, 관계 맺기 같은 요소들도 성교육의 일부로 포함된다고 들었습니다. 연령별로 꼭 다뤄야 할 핵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양육자 교육 시 ‘자아 단단하게 만들기’와 ‘경계존중교육’을 특히 강조해요. 이는 아이의 전 생애에 걸쳐 부모가 꾸준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에요.
연령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0세~3세는 일상 속 긍정적인 느낌과 규칙을 알려주는 시기로, 성교육을 앉혀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아이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돕는 시기죠.
4세~7세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는 시기예요. 몸의 차이, 생명 탄생 등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므로 그림책을 활용해 솔직하고 정확하게 답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경계존중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해요.
초등 저학년은 사회생활의 시작 단계로,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고 경계존중교육을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고학년은 사춘기, 음란물,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야 하죠.
성교육은 조기교육이 아니라 ‘적기교육’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질문하지 않는다고 기다리기보단, 연령에 맞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해요.
초등학교에서도 성 관련 사건이 늘고 있고, 디지털 공간의 문제도 커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나 특히 주의 깊게 봐야 할 요즘 아이들의 특징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반응도 민감해졌어요. 유행도 빨리 바뀌고, 콘텐츠도 점점 짧아지고 있죠. 또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어요. 예전엔 놀이터에서 누구와 노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방 안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놀기 때문에 부모가 알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아이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이야기하며, 어떤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지 늘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 끈을 놓치는 순간, 아이가 무엇을 듣고 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거든요.
‘문제가 생겼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고 관심을 보여야 해요.
메타버스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도 이제 성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 디지털 시대 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를 숨기거나 사용을 막는 것만으로는 아이를 보호할 수 없어요. 나는 없어도 친구는 갖고 있거든요. 무조건 막는 건 마치 교통사고가 걱정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과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아이가 스스로 조절하고 신중하게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거예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 그것은 적응의 일부였을 뿐이에요.
그러니 어른이 그 현실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해야 해요. 아이들이 어떤 문화에 노출되는지를 알고, 학교나 학업 이야기 외에도 온라인에서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를 꾸준히 이야기 나눠야 해요.
“어른이 준비되면,
아이는 위험 대신 신뢰를 찾습니다.”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배워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른은 아이에게 길을 안내해줘야 하죠. 그런데 성교육은 어른들도 배운 적이 없는 분야다 보니, 아이의 질문 앞에서 당황하고 피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아이는 더 이상 물어보면 안 되겠다고 느끼고, 결국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게 되죠.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누구나 아실 거예요.
반면 어른이 먼저 배우고 준비되어 있으면, 아이의 질문에도 여유 있게 답할 수 있고 대화가 열려 있어요. 그러면 아이는 신뢰하는 어른에게 질문하고, 인터넷보다 안전한 경로로 지식을 얻게 되죠.
게다가 요즘 세상은 많이 달라졌잖아요. 과거 방식만 고집해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어른이 먼저 공부해야 해요.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반응이나 변화의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성교육을 마친 뒤였어요. 한 아이가 “우리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수업을 들은 거야. 이 날을 기념해야 해.” 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손에 ‘성’이라는 글자를 쓰고 인증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요. 웃으며 찍어줬지만 마음속에선 울컥했어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고학년부터 개인교육을 받던 한 아이예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교육했지만, 어머니가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늘 실천하려 하셨어요. 고민이 생기면 저와 상의도 하셨고요.
그 아이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는데, 연애도 엄마와 이야기 나누며 공유하고 있어요. 관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부모와 나누며 안전하게 성장한 거죠. 이보다 더 든든한 성교육은 없다고 생각해요.
자주스쿨에선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과 상담사, 전문가 교육도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전문가 대상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나요?
성교육의 출발은 ‘나’를 돌아보는 거예요. 나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아는 게 출발점이죠.
그래서 전문가 교육에서는 개인적 점검과 함께, 안전과 존중을 위한 전문가로서의 민감성과 역할 인식을 강조해요.
또 전문가라고 해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아이 주변의 어른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역할 정립을 돕고 있어요.
성교육은 결국, 전문가 자신의 가치관이 활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메타인지 능력도 키워야 하죠. 그리고 그 교육이 ‘당연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방향입니다.
대표님은 “성교육이 당연한 문화가 되는 사회”를 말씀해오셨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정말 간단해요. 관심만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알게 돼요.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른들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지를요.
어른들은 걱정은 하지만 행동은 하지 않아요. 성교육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사건이 발생해야 겨우 중요해지죠.
이제는 어른들이 바뀌어야 해요. 인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아이들도 바뀔 수 있어요.
부디 성교육에 관심만이라도 가져주세요.
대표님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강의실에 설 때, 어떤 마음으로 서 계신가요?
제가 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는 일’,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믿어요. 이 믿음이 제 힘의 원천이죠.
강의실에 서면, 저는 제 능력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갖게 돼요. 참여자들이 저의 말에 집중하고, 제가 제시하는 기준이 그들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 제 말의 무게를 늘 생각해요.
“신중하게, 그러나 시원하게. 누군가의 방향을 밝혀주는 전문가가 되자.”
이 다짐을 매일 새기며 강의에 서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김민영 대표는
자주스쿨 대표이자 서울사이버에듀 운영교수로 활동 중이며, 인구보건복지협회 전문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상담학 박사이자 AASECT(미국 성교육가·성상담가·성치료사 협회) 인증 성치료 전문가로, 16년간 청소년과 학부모 대상 성교육 및 상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BS <부모 클래스>, SBS <스페셜> 등 방송 출연과 더불어, 메타버스 시대에 맞춘 새로운 성교육 콘텐츠 개발자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우아한 성문답』, 『딸아 성교육하자』, 『챗GPT 성교육』, 『지금 해야 늦지 않는 메타버스 성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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