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7 온라인뉴스팀
미국 CNBC 심층 보도… HSBC 프레데릭 노이만(Frederic Neumann)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시아발 ‘금융위기 시즌 2’ 경고음

[익스퍼트인사이트 온라인뉴스팀] 1997년 아시아 전역을 도미노처럼 강타하며 국가 부도 사태와 대량 실업, 금융 시스템의 연쇄 붕괴를 초래했던 ‘아시아 외환위기(Asian Financial Crisis)’의 망령이 30여 년 만에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의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다국적 투자은행 중 하나인 HSBC의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현재 아시아 주요국들이 직면한 거시경제적 환경과 금융 취약성이 1997년 위기 발발 직전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striking similarities)’는 준엄한 경고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초강세 달러(킹달러)의 귀환, 그에 따른 아시아 각국 통화가치의 기록적 절하와 급격한 자본 유출 압박이 맞물리면서, 과거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한국을 거쳐 아시아 전체를 집어삼켰던 외환위기의 ‘속편(Sequel)’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 세계 금융권의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금융 전문 방송 CNBC는 최근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재연인가?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라는 제하의 보도를 통해, 프레데릭 노이만(Frederic Neumann) HSBC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심층 분석을 전격 타전했다. CNBC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통화가치 폭락, 급격한 자본 엑소더스, 은행권의 연쇄 도산이라는 시장 혼란 속에 아시아 전역의 경제를 처참한 침체로 몰아넣었다”고 상기시키며, 노이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을 인용해 “오늘날 아시아가 마주한 금융 스트레스 환경은 외환위기 직전의 취약성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이만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목한 가장 위태로운 평행이론의 핵심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금리 장기화와 아시아 통화들의 급격한 가치 폭락’이다. 1997년 위기 직전에도 미국 경제의 강력한 확장세 속에 연준이 긴축 정책을 유지하며 달러화 가치가 치솟았고, 이는 미국 달러에 통화가치를 고정(페그제)해 두었던 태국 바트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그리고 대한민국 원화의 과대평가를 무너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2026년 오늘날 역시 미국 연준의 피벗(금리 인하) 지연과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로 인해 달러 인덱스가 강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 엔화는 역사적 바닥권을 맴돌고 있으며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 동남아 신흥국 통화들 역시 심각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추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이탈이 가속화되고, 달러화로 표시된 막대한 대외 채무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과거 1997년의 전개 양상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아시아 경제가 짊어진 ‘부채의 규모와 질’이 과거 1997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수위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주로 대기업(재벌)과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단기 외화 차입이 문제였다면, 현재는 팬데믹 기간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그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아시아 전반의 금융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짓누르고 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연쇄 디폴트와 내수 침체, 지방정부의 숨은 부채(LGFV)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뇌관이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주요국들 역시 급증한 민간 부채와 은행권의 부실여신(NPL) 증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될수록 차주들의 이자 상환 능력이 한계에 봉착하고, 이는 취약한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로 이어져 전체 신용 시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잠재적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이 처한 ‘통화정책의 극단적 딜레마’ 또한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내수 침체와 부동산 부실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3%대 후반에서 4%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성급히 금리를 내렸다가는 미국과의 금리 역전 격차가 위험 수위로 벌어지게 된다. 이는 즉각적인 외국인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추가 폭락을 촉발해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외환보유액의 급격한 소진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된다. 반대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거나 묶어둘 경우, 한계에 다다른 국내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건설업계의 줄도산이 현실화되는 진퇴양난의 외나무다리에 갇힌 셈이다.
물론 대다수 국제 금융 전문가들은 아시아 경제가 1997년 당시와 같은 전면적인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간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의 혹독한 트라우마를 교훈 삼아 외환보유액을 수천억 달러 규모로 천문학적으로 확충해 두었으며, 경직된 달러 페그제 대신 유연한 변동환율제를 채택해 대외 충격을 환율 자체로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방파제를 구축해 놓았다. 또한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 등 역내 다자간 통화스와프 체계도 과거에 비해 한층 정교해졌다.
그러나 노이만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거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외형적 방파제가 결코 ‘완벽한 불침번’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다. 1997년과 달리 현재의 글로벌 경제는 미·중 패권 전쟁,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지정학적 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복합 악재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역 흑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달러를 벌어들여 외환보유액을 채워 넣어야 하는 아시아 제조업 중심국들의 수출 엔진이 서방의 보호무역주의와 대중국 견제, 글로벌 교역 둔화로 인해 급격히 식어가고 있는 현실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구조적 위협이다. 외환보유액이라는 곳간의 쌀은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이를 다시 채워 넣을 수출 길은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CNBC를 통해 전해진 HSBC의 경고는 ‘과거의 위기는 언제든 다른 형태의 가면을 쓰고 반복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글로벌 시장에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1997년의 비극이 국가 차원의 외환 유동성 고갈에서 터져 나왔다면, 2026년의 잠재적 위기는 고금리 장기화와 글로벌 분절화 속에서 아시아 시스템 내부의 곪아 터진 부채 뇌관과 취약한 통화 신뢰도가 결합해 폭발하는 ‘복합 구조적 시스템 위기’로 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눈앞에 닥친 고환율과 자본 유출의 파고 속에서 아시아 각국 정부와 금융 당국이 과연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금융 방파제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1997년 붕괴 전야의 서늘한 기시감이 2026년 아시아 금융 시장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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