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5 온라인뉴스팀
레바논 베이루트서 78세로 사망…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연대 극단적 테러의 주범

[익스퍼트인사이트 온라인뉴스팀] 1970년대 전 세계를 공포와 충격에 빠뜨렸던 극단적 좌익 테러 단체 ‘일본적군(日本赤軍·Japanese Red Army)’의 핵심 대원이자, 1972년 이스라엘 로드 공항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오카모토 코조(岡本公三, 78)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사망했다. 주요 외신들은 24일(현지시간) 레바논 현지 소식통 및 팔레스타인 정파 관계자들의 발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한때 ‘국제 테러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며 수십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던 잔혹한 테러범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동아시아 극좌 운동과 중동 분쟁이 기묘하게 얽혀 있던 20세기 국제 테러리즘의 가장 어두운 한 페이지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72년 5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4세였던 오카모토 코조는 일본적군 간부 오쿠다이라 츠요시, 야스다 야스유키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한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타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의 로드 국제공항(현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 수령 구역에 들어선 이들은 악기 가방 속에 숨겨온 체코제 체스카(Vz. 58) 돌격소총과 수류탄을 꺼내 들고, 입국 수속을 기다리던 무고한 승객과 공항 직원들을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와 수류탄 투척을 감행했다. 단 몇 분 동안 이어진 아비규환의 난사 속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성지순례객 17명과 이스라엘인 8명, 캐나다인 1명 등 총 26명이 현장에서 참혹하게 숨졌고, 7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중에는 훗날 이스라엘 대통령이 되는 에프라임 카치르의 형이자 세계적인 미생물학자인 아하론 카치르 교수도 포함되어 있어 이스라엘 사회에 거대한 슬픔을 안겼다.
테러 감행 직후 공범이었던 오쿠다이라와 야스다는 수류탄 자폭 및 현장 경비원의 응사로 목숨을 잃었으나, 오카모토는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 현장에서 이스라엘 보안군에 의해 생포됐다. 이 사건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표방하던 일본의 극좌 무장 단체 일본적군이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과 연대하여 벌인 국제 연합 테러로, 항공기 납치 위주의 이전 테러 양상에서 벗어나 민간인을 직접 표적으로 삼은 무차별 총기 난사형 테러의 시초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유례없는 충격을 주었다.
일본 남부 구마모토 및 가고시마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오카모토는 가고시마 대학 농학부에 재학 중이던 시절 극좌 학생 운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 시게노부 후사코가 이끄는 일본적군에 가담한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명목으로 중동으로 건너가 군사 훈련을 받았다. 생포 직후 이스라엘 군사법정에 선 오카모토는 “우리는 오리온자리의 세 별이 될 것”이라는 등 기괴한 발언을 남기며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13년 뒤인 1985년, ‘지브릴 협정’으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PFLP-GC) 간의 대규모 죄수 교환을 통해 전격 석방됐다. 이스라엘 군인 3명을 되찾기 위해 팔레스타인 및 국제 죄수 1,150여 명을 풀어준 이 협정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된 오카모토는 리비아와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으로 이주했다. 1997년 레바논 당국은 위조 여권 사용 및 불법 입국 혐의로 오카모토와 다른 4명의 일본적군 대원들을 체포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신병 인도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레바논 정부는 2000년 다른 4명만을 일본으로 강제 송환하고 오카모토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에 맞선 resistance(저항) 투사라는 점과 수감 생활 중 얻은 정신적·신체적 고초를 이유로 ‘정치적 망명’을 허가했다. 이는 일본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결정이었다.
망명권을 얻은 이후 오카모토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인근에서 PFLP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 생활을 이어왔다. 오랜 감옥 생활과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던 그는 매년 5월 30일 팔레스타인 파벌들이 주최하는 로드 공항 테러 기념행사에 가끔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실제로 2022년 5월, 사건 50주년을 맞아 베이루트에서 열린 행사에도 쇠약해진 모습으로 참가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일본 경찰청과 국제형사기구(ICPO)는 그를 국제 수배 명단에 올리고 계속해서 신병 확보를 추진했으나, 레바논 정부의 보호와 그의 사망으로 끝내 법적 처벌을 완료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오카모토 코조의 사망이 1970년대 세계를 흔들었던 ‘이념형 국제 테러리즘’의 잔재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평한다. 한때 혁명을 부르짖으며 무고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이들의 행위는 그 어떤 정치적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참혹한 범죄이자 비극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유일한 생존 테러범이었던 오카모토가 베이루트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함에 따라, 로드 공항 테러의 비극적 유산은 54년 만에 완전히 과거의 역사로 남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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