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4 민수경 발행인
봄볕이 나른한 오후 유영만 교수님을 만났다. 천천히 길게 드리운 봄 햇살의 섬세함은 유영만 교수님을 닮았다. 평소 언어유희를 즐기는 분인 터라 느릿한 말 속에 숨은 촌철살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언제나 여운이 길었다. 편안하지만 생각을 집중시키고 때로 말속에 담긴 고급 유머를 못지않게 받아치고 싶은 묘한 승부욕을 발동시키는 분이다.
나의 마지막 단어는 도전이라 말하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그는 조금 남다른 삶을 건너왔다.
민 : 교수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식생태학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계시는데 어떻게 그런 네이밍을 탄생시키신 건가요?
유 : 저는 한양대학교 교수이기도 하지만 교수라고 소개하면 다소 딱딱하게 여기실까 봐 제 명함에 ‘지식생태학자’라고 써서 다닙니다. 저는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깨달은 건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특히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자연이 많이 갖고 있다는 거였어요. 실제 생태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 살아가는 원리나 이유, 방식들을 잘 살펴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융합학문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거목은 흔들리는데 고목은 흔들리지 않는다.’ 죽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거목은 커도 흔들리죠. 그러니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원래 다 흔들리면서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흔들려 봐야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뽑는 거죠. 이렇게 자연의 원리 등을 우리의 삶과 엮어서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훨씬 더 편안하게 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런 연유에서 지식생태학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거목은 커도 흔들리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원래 다 흔들리면서 자라는 겁니다.”
민 : 이번에 96번째 책을 출간하셨는데, 사실 책이라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 방향성이 다 담길 수밖에 없잖아요. 96권의 책을 관통하는 교수님만의 메시지가 있을까요?
유 : 네,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다섯 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 번째가 열정이에요. (Passion)
두 번째가 혁신 (Innovation)
세 번째가 인간적 신뢰 (Trust)
네 번째가 도전 (Challenge)
다섯 번째가 행복 (Happiness)
이 다섯 단어의 영어 첫 이니셜을 따면 PITCH가 됩니다. 그래서 피치를 올리는 삶을 추구하는 거고요.
또 야구 선수를 피처라고 하잖아요. 투수가 공 던지는 스타일이 다 다른데 그걸 피칭 스타일이라고 해요. 야구 선수가 저마다의 피칭 스타일로 자기만의 색깔 있는 공을 던져서 타자들이 공을 못 치게 하듯이 저도 이 5가지 키워드로 저만의 삶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거거든요.
열정, 혁신, 신뢰, 도전 결국 이 네 가지 키워드가 모여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살까로 종결되는데, 그래서 이 다섯 가지 키워드대로 생각하고 매일매일 작은 스토리를 만들고 다섯 가지 키워드대로 사람을 사귀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사귈 때도 생각이 고루한 사람보다는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 뭔가 생각이 남다른 사람 이런 사람들을 사귀거든요. 그래서 이 5가지 키워드는 저에게는 일종의 나침반 또는 북두칠성 같은, 의사결정 할 때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모든 책에도 이 다섯 가지 키워드가 다 스며들어 있죠.
민 : 그중에서도 내가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하는 단어는 뭔가요?
유 : 그러면 저는 도전을 꼽습니다. ‘마지막 단어’라는 키워드가 있거든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한 가지 단어를 얘기해 봐라! 그게 바로 철학자 리처드 로티라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마지막 단어’거든요. 저의 마지막 단어는 도전이에요. 저는 책 100권 쓰는 것도 도전해보고, 세계 7대 대륙 최고봉에 다 올라가 보는 것도 도전도 해보고… 늘 도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농사도 지어 봤고, 공장에서 일도 해봤고, 벤처기업 부사장도 하다가 말아 먹고… 농공상을 다 해봤잖아요. 그러다가 독서를 하다 보니 개념과 체험이 만나는 거죠.”
민 : 교수님의 학창 시절은 어떠셨어요? 그때도 이렇게 언어적 감각도 뛰어나고 사색이 깊으셨나요?
유 : 어렸을 때는 자연이 저의 놀이터, 자연이 교과서였어요. 학창 시절 저는 공고를 다녔는데 용접하면서 소주도 엄청 마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소주를 못 마셔요. 하하하. 고등학교 2학년 때 무기정학 맞고… 아무튼 학창 시절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죠.
민 : 소위 말하는 문제아였네요?
유 : 그렇죠. 심각한 불량 학생이었죠. 그리고 일 마치고 개포동 포장마차 돌아다니면서 술 마시고의 연속이었죠. 그때 제가 철이 들어서 개포동 뒤에 배밭만 몇 평 사놓았어도 지금 이렇게 고생 안 할 텐데 말이에요. 그때 철이 좀 덜 들어서 아쉽네요. 하하하.
민 : 하하 부동산 투자를 안 한 걸 지금 후회하는 걸로 인터뷰가 흘러가고 있어요.
유 : 일과 유흥생활만 하느라 책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원래 책과 관계가 별로 없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공고생이 쓴 행정고시, 사법고시 패스한 수기집을 읽고 내 삶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꿈을 품게 된 거예요. 그래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법학과는 점수가 안 나와서 못 갔어요. 한양대 교육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한양대 교육공학과가 신설학과라서 미달이었거든요. 하하하. 그렇게 해서 제 인생이 이렇게 달라졌어요.
민 : 지금 와서 보면 법대에 지원을 못 한 게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유 : 다행이죠. 제가 고시 공부를 계속했으면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고시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군대 갔다 와서 결심했어요. 고시 공부 그만 두기로. 그리고 결단을 내렸죠. 고시 공부하던 책을 쌓아 놓고 기름을 부어서 그동안 공부하던 책을 다 불질러 버렸어요. 그 책을 다 불질러 버린 이후에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진짜 책 읽는 재미에 빠진 게 저를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유자로 만든 원동력이 된 거고 그때부터 전공책만 읽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제가 한 경험들과 연결이 되기 시작했어요. 저는 농사도 지어 봤고, 공장에서 일도 해봤고, 벤처기업 부사장도 하다가 말아 먹고.. 농공상을 다 해봤잖아요. 그러다가 이제 독서를 엄청나게 하다 보니 개념과 체험이 만나는 거죠. 그러면서 이렇게 저의 체험을 어제와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하게 되었고요.
민 : 그럼 교수님이 어떤 삶의 경로가 확 바뀐 건 책 때문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유 : 그렇죠. 저를 처음으로 잘못된 꿈을 품게 만든 책이 고시 체험생 수기집이었으니까.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그 책을 안 읽었다면 아직도 지금 평택 송탄 유흥가에서 여전히 밤무대를 휩쓸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책 한 권이 저를 고시 공부, 그러니까 ‘아 이렇게 나같이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도 고시 공부를 하면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겠다’ 그 당시 이런 잘못된 꿈을 꾸게 만든 거였거든요. 하하하.
민 : 앞에서 말씀하셨던 책들을 관통하는 메시지 중에 하나,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단어가 ‘도전’이었는데 교수님이 따로 말씀을 안 하시더라도 그게 느껴지거든요. 그동안 교수님이 삶에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 일부러 모험이나 도전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으신가요?
유 : 일부러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작가이자 대중 강연가이기도 하잖아요. 내 삶을 능가하는 글을 쓰거나 내 삶을 능가하는 말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청중이나 독자들에게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경험만큼 좋은 소재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사하라 사막에서 산전수전 경험을 해서 쓴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라는 책이 있는데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완주를 못 하고 3일째 120KM 지점에서 탈진하는 바람에 레이스를 포기했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세계적인 명언을 남기고 왔잖아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란 말을 절대로 쓰지 마라.” 하하하.
이런 명언은 앉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믿고 한계에 도전을 하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경험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도 책상 지식인이 만든 머리의 언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언어를 디자인하라』라는 책에서도 계속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몸의 언어를 쓰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되고, 공감이 되고, 감동을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도전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제와 다른 체험을 해봐야 어제와 다른 사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삶의 스토리를 통해서 더 감동적으로 배우게 되고, 듣게 되는 것 같아요.
“Mind controls Body가 아니라 Body controls Mind라고 생각해요.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집이거든요. 집 속에 세 들어 사는 애가 마인드인 거예요.”
민 :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이나 모험은 어떤 건가요?
유 : 킬리만자로 5,800m 올라갈 때예요. 제가 정상까지 갔다 왔거든요. 그에 앞서 사하라 사막에 가서는 완주를 못했었는데 킬리만자로는 정상을 정복했단 말이죠. 이게 멘탈, 마인드의 차이일까요? 아니면 체력의 차이일까요? 체력입니다. ‘Mind controls Body’가 아니라 ‘Body controls Mind’라고 생각해요.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집이거든요. 집 속에 세 들어 사는 애가 마인드인 거예요.
집이 막 흔들리면 그 속에서 거주하는 마음도 흔들립니다.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신체성, 그러니까 몸이 아직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명령을 내리면 말을 듣는다는 거예요. 사하라 사막에서는 제가 마인드 컨트롤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데도 몸이 안 일어나는 거예요. 못 일어나는 거죠. 마인드 컨트롤이 안 돼요. 그런데 킬리만자로 정상에 갈 수 있었던 중요한 동인은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왜냐면 아직 신체가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정상에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체성이 인간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굉장히 중요한 원동력이구나… 이걸 킬리만자로에 가서 깨달은 거죠.
이렇게 저는 몸으로 겪어서 체험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이런 게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민 : 말씀하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정신이 흔들거려서 못 하는 건데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시는 건가요? 매일매일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혹시 스스로한테 엄격하신 편인가요?
유 : 엄격한 것도 있지만 이제 습관이 되어서 힘들지는 않습니다. 습관 들이는 방법 하나 알려 드릴게요. 아침에 운동하기로 결심했잖아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려고 시계를 맞췄어요. 알람을 끄는 순간 생각이 시작되는 거죠. ‘아 어제 술도 한 잔 했는데 오늘은 건너뛸까?’ 그런데 알람을 끄고 1초 이상 생각을 하게 되면 일어나기가 점점 더 불가능에 가까워져요. 그때부터 운동을 안 해도 되는 10가지 이유를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합리화를 못 하게 하려면 시계를 끈 다음에 기계처럼 일어나야 해요. 일어나서 갈까 말까를 생각하면 안 돼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면 실행하게 되고, 반복되니 습관이 된 거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핑계 대지 말고 예외 규정을 만들지 마세요. 밥을 드시는데 운동은 왜 안 하는 거죠? 밥 먹는 습관도 대단한 결심을 한 다음에 밥을 먹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든 습관이 다 그렇게 밥 먹듯이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민 : 교수님의 그간 삶의 경로들이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경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 힘들었던 일들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때 가장 힘이 됐던 건 뭐예요? 책인가요?
유 : 책일 수도 있고요. 저를 이렇게 키워 준 건 저의 은사님들이세요. 대학원 때 지도교수님 두 분, 그다음 저를 유학까지 길을 안내해 주신 분들도 계시고 미국에 계시는 지도교수님은 저를 박사로 만들어 주셨고요. 요소요소 때마다 저는 스승님을 잘 만났어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은 사람이 만나면서 만들어낸 사회적인 합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은사님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예상하셨듯이 책도 역시 제가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사유를 할 수 있는 힘을 주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운동을 통해서 몸에 중심을 잡고 체력을 키우니까 열정이 생기고, 결단력이 생기고 뭔가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이런 것의 가장 근원적인 힘이 몸이라고 생각해요. 체력이 언제 생기냐면 실행을 해야 체력이 생기거든요. 실행력(實行力)에 행(行)자를 빼면 실력(實力)이 되거든요. 체력이 실력을 만드는 거예요.
민 : 이제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이런 질문은 많이 받아 보셨겠지만 사람들에게 유영만 교수님이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라세요?
유 : ‘책을 많이 쓴 사람’, ‘대학교수’ 이런 것보다 ‘유영만 교수하고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함께 밥 먹고 싶은 사람으로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밥 사’ ‘술 사’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사람이요. 내 인생에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유영만 교수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사람.
사실 제가 고민에 대한 답을 다 주는 건 아니지만 ‘밥 한 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 이렇게 떠올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민 : 교수님 오늘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도 식사하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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