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2 유영만 교수
삶의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실패가 제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줬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을 그만두고, 제 모든 에너지를가장 중요한 일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스가 하버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다. 바닥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최악의 조건이지만 삶의 거품을 걷어내고 내 이름 석자로 버틸 수 있는 나력(裸力, Naked Strength, 유영만 2021.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 모루)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나력은 자신을 수식하는 또는 수식했던 모든 형용사의 거품을 걷어내고 자기 이름 석자로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이다. 나력은 성공가도를 달릴 때는 알아채지 못한다. 처절하게 망해본 사람, 가장 밑바닥에서 절치부심의 시기를 겪어본 사람만이 자기 몸에 아로새겨진 나력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자세를 낮추는 것은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힘없이 주저앉는 것이 아니다. 내려갈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바닥에 가봐야 올라갈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는 원점사고이자 초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는 초짜사고다. 지금 바닥을 흔들어야 나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 수 있다. 똑같은 힘을 위에서 가하면 무너지지 않지만 바닥을 흔들면 무너진다. 내가 근거하고 있는 바닥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면 밑바닥에 내려가서 내 삶의 존재기반을 흔들어봐야 한다. 흔들려본 사람만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바닥’은 ‘신념’이다. ‘신념’을 흔들어야 사람이 바뀐다. 관념은 머리에서 자라지만 신념은 삶의 밑바닥에서 경험한 교훈을 토대로 자란다. 그 신념도 자주 흔들어봐야 허공에 매달린 관념이 아닌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
싸움소는 머리를 상대 소보다 최대한 낮춰야 이길 수 있다. 진짜 고수는 이기기 위해 자세를 먼저 낮추고 아래로 내려간다. 거기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고 상대의 허점을 간파한다. 씨름선수도 상대선수보다 몸을 최대한 낮추는 이유다. 자세를 높일수록 상대방의 공격에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수동적으로 웅크리고 있다가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웅크리고 위축되지 말고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적극적으로 납작 엎드려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끊임없이 낮춘 자세는 기회를 잡고 무섭게 파고들 수 있는 튼실한 기반이 된다. 낮추면 기회가 보인다. 지금은 성장에서 성숙으로 지향할 때다. 성장은 완성된 목표를 향한 일사 분란한 행진곡을 지향하지만 성숙은 끊임없이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오늘보다 다른 내일의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미완성의 교향곡이나 변주곡을 지향한다.
“개울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칼 퍼킨스의 말이다. 개울 바닥이 돌에 부딪친 시냇물만이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하공을 날아가는 새들이 알 수 없는 밑바닥 진실은 바닥을 기어본 사람만이 몸으로 감지할 수 있다. 몸으로 감지한 감각적 경험과 깨달음은 깊은 사유의 시간을 통해 숙성되어간다. 거기서 성장일변도로 달려간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성숙한 인간의 내면적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울퉁불퉁한 밑바닥을 훑고 살아가는 시냇물에게는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의 주름이 있다. 그 주름에 시냇물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값이 고스란히 새겨진다.
참고 : 『끈기보다 끊기(2023, 유영만 저)』 문예춘추사
칼럼니스트 유영만 교수는
질문으로 관문을 열어가는 지식생태학자이다.
불현듯 다가오는 뜻밖의 질문이 던지는 낯선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한다.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기보다 전두엽을 낯설게 자극하는 충격적인 질문과 비판적 문제 제기를 즐기는 탐구과정에 언제나 몸을 던지며 일상에서도 비상하는 상상력을 잉태하는 지식생태(生態)학자다. 지시와 명령의 언어보다 질문과 의문의 언어로 잉태된 미지의 앎에 언제나 전율하는 감동을 느낀다. 오늘도 불안한 질문의 바다에서 불확실하지만 심장 뛰는 앎의 여행을 즐긴다. 당연함에 의문을 던져놓고 통념에 통렬한 시비를 걸면서 어제와 다른 통찰을 몸으로 체득하는 탐험을 추구한다.
뜨거운 언어의 모루 위에서 틀에 박힌 질문을 폐기하고, 잠자는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색다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야성으로 지성을 일깨우는 색다른 문제 제기에 한눈을 팔고 있다. 우발적 만남으로 전율하는 앎과 삶의 이중주를 사랑하며 어제와 다른 나로 거듭나기 위해 날선 언어로 자아를 재서술하는 아이러니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공부는 망치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으로 승부하라》 등 저서와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빙산이 녹고 있다고》 등 역서를 포함해서 총 90여 권의 저·역서를 출간했으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고 또 읽으면서 쓰고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메일 u010000@hanyang.ac.kr
유튜브 www.youtube.com/k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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