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8 유영만 교수

내려가서 절치부심 하다 보면
다시 솟구쳐 오를 생각도
잉태된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배한봉의 ‘육탁’이라는 시의 일부다. 어시장에서 생선이 바닥을 치는 모습을 목격한 시인이 마지막 몸부림치는 생선의 위력을 시적 상상력으로 담아냈다. 생선은 생의 마지막이라는 위기 감지와 함께 난생 처음 맞이하는 물이 없는 바닥에 자기 몸이 닿는 순간, 가장 센 힘으로 살고자하는 욕망을 표출한다.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김주대 시인이 ‘진화론’에서 말한 것처럼 온몸에서 눈이 자라고 발이 자란다는 사실을 지금 생선은 눈앞에서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만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엇임을 이해한다. 아래로 떨어진, 그것도 잘 떨어진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고 그 ‘위’를 오용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27쪽). 리처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지은이), 이현주(옮긴이)(2018). 《위쪽으로 떨어지다》. 서울: 국민북스. 에 나오는 말이다. 자전거 타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고 넘어서는 방법은 없다.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빨리 타는 매뉴얼은 존재해도 실제로 그대로 따라한다고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로지 넘어지는 방법을 통해서만이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다. 자세를 가급적 낮추고 무게 중심을 잡는 요령을 몸으로 터득해야 한다.

넘어져봐야 다시 일어서는 방법도 깨달을 수 있다.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자빠져보며 옆으로 쓰러지는 경험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노하우를 지혜로 남겨준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무너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아주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여러 번 넘어져봐야 치명적인 실패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아이들도 여러 번 시행착오도 겪어보고 처절하게 무너져봐야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과 능력을 체득할 수 있다. 내려가서 넘어지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거기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고 배움이 있고 다시 일어설 방법과 용기가 숨어 있다. 사람은 넘어졌다 일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내공이 생긴다. 바닥을 치면서 생긴 힘이 축적될 때 더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차원이 다른 힘도 생긴다.

우린 그 동안 모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두 정상에 이르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앞만 달리던 ‘질주’가 ‘탈주’로 바뀌고 ‘탈주’는 이제 ‘탈선’의 운명에 직면했다. 올라가는 길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고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고 생각해왔다. 먼저 올라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배웠다. 성취 중독증이며 ‘성’공만능주의에 ‘취’한 자들의 성공복음이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오르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으며, 위로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진 삶의 습관과 성향이 나도 모르게 악화일로를 걷게 만들었다. 우리 사고를 지배해온 언어도 속도와 효율, 목표와 성과라는 말이었다. 이제는 ‘엘리베이터’보다 ‘내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보다 ‘내리컬레이터’를 타야 할 때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말도 맞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오르고 다시 오르려면 일단 내려와야 한다!” ‘오름’이 ‘옳음’을 동반하지 않을 때 심각한 후유증이 생기고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지금은 내려가야 다시 비상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다. ‘내려가기’는 또 다른 ‘올라가기’다. ‘내려감’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도약의 서곡이다. ‘내려가기’는 스스로 바닥으로 향하는 ‘겸손한 마음’이자 ‘초보자의 마음’이다. ‘내려가기’는 근본(根本)과 기본(基本)을 다지기 위해 밑바닥에서 용틀임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내려가는 연습’은 ‘물리적 위치이동’만을 의미하지 않고 ‘심리적 위치이동’도 포함한다. ‘내려가는 연습’은 올라가본 사람만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딘가에 비추어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의도적 노력이다.

거울에 비추어 자기반성을 생활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바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절치부심한 다음 수증기로 변신하여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이치다. 고 신영복 교수에 따르면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받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바다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바다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시련과 역경을 견뎌낼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법(法)이라는 한자도 물 수(氵) 변에 멈출 거(去)자의 합성어다. 물이 멈추는 곳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이다.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가 들어있지 않은가. 아래로 내려가 멈춰야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法則)과 원리(原理)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참고 : 『끈기보다 끊기(2023, 유영만 저)』 문예춘추사

칼럼니스트 유영만 교수는

질문으로 관문을 열어가는 지식생태학자이다.

불현듯 다가오는 뜻밖의 질문이 던지는 낯선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한다.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기보다 전두엽을 낯설게 자극하는 충격적인 질문과 비판적 문제 제기를 즐기는 탐구과정에 언제나 몸을 던지며 일상에서도 비상하는 상상력을 잉태하는 지식생태(生態)학자다. 지시와 명령의 언어보다 질문과 의문의 언어로 잉태된 미지의 앎에 언제나 전율하는 감동을 느낀다. 오늘도 불안한 질문의 바다에서 불확실하지만 심장 뛰는 앎의 여행을 즐긴다. 당연함에 의문을 던져놓고 통념에 통렬한 시비를 걸면서 어제와 다른 통찰을 몸으로 체득하는 탐험을 추구한다.

뜨거운 언어의 모루 위에서 틀에 박힌 질문을 폐기하고, 잠자는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색다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야성으로 지성을 일깨우는 색다른 문제 제기에 한눈을 팔고 있다. 우발적 만남으로 전율하는 앎과 삶의 이중주를 사랑하며 어제와 다른 나로 거듭나기 위해 날선 언어로 자아를 재서술하는 아이러니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공부는 망치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으로 승부하라》 등 저서와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빙산이 녹고 있다고》 등 역서를 포함해서 총 90여 권의 저·역서를 출간했으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고 또 읽으면서 쓰고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메일 u010000@hanyang.ac.kr
유튜브 www.youtube.com/kecologist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nowledge_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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