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6 안계환 작가
오나라 조정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조조가 서신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담겨있던 항복하라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때 대신들 대다수는 조조와의 싸움은 불가하니 손권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 유비의 명을 받아 오나라에 온 제갈량은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유비와 손권이 힘을 합쳐 ‘대 조조 연합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이 꼬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장군 주유를 화나게 할 목적으로 이런 수작을 벌였다.
“조조는 용병을 잘해 천하 누구도 맞서지 못하오. 그러니 장군께서 결단해 항복하시면 가히 처자와 부귀를 보전하게 될 것이오.”
그러자 노숙이 크게 노해 말했다.
“그대가 감히 우리더러 역적에게 무릎 꿇고 항복하라는 것이오?”
제갈량이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제게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수고롭게 제물을 준비할 것도, 영토를 바치고 인수를 보낼 것도 없는데요. 조조는 단 두 사람만 원하니 그들을 준비하면 물러갈 것이외다.”
“아니 대체 그 두 사람이 누구란 말이요?”
“제가 융중에서 기거할 적에 듣자하니, 조조가 장하에 새로 동작銅雀이라는 대를 하나 지어 올렸는데 그곳에 천하 미녀를 뽑아 채워 넣으려 한다고 하오. 본디 조조는 호색한인지라 강동에 사는 교橋씨 자매에 흑심이 있다합니다. 그가 비록 백만 대군을 이끌고 강남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이 두 여인을 얻고자 함입니다. 조조가 두 여인을 얻으면 흡족해 필히 군사를 거둘 것이외다.”
이 말을 들은 주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한마디 더 해 보았다.
“조조가 교씨 자매를 탐한다는 증거가 있소?”
그러자 제갈량은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었다는 그 유명한 <동작대부> 한 대목을 이렇게 읊었다.
“동쪽과 남쪽에 두 교씨를 두고서 아침저녁으로 즐겨 보리라
攬二喬於東南兮, 樂朝夕之與共”
이 대목을 듣고 격분한 주유는 손권을 설득해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적벽대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이 대목은 제갈량의 절묘한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 창작되었다. 교씨 자매가 누구던가? 과거 손책과 주유가 강동을 정벌하던 시절, 함께 아내로 얻었던 이들이었다. 제갈량은 시에 등장하는 교喬를 같은 뜻을 가진 교橋로 교묘히 바꿔치기하는 묘수를 부렸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주유를 화나게 하기 위해 이런 언사를 날리고 있는 것. 그런데 소설 삼국지에는 시간을 마음대로 오가는 장면이 꽤 있지만 여기서도 제갈량은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적벽대전은 서기 208년 늦가을에 일어난 사건이고 조조가 동작대를 세운 것은 210년 겨울의 일이었다. 조식이 <동작대부>를 지은 건 전쟁 후 5년이 지난 213년이었다. 더구나 두 다리喬를 즐기겠다고 한 것이지 두 교橋씨를 희롱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직 있지도 않은 건물 동작대와 다르게 쓰인 시를 가져다 주유를 화나게 했던 것이다.
더 큰 반전은 신묘한 능력을 가진 제갈량을 추켜세우기 위해 그 상대편에 있던 조조를 악역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수십만 병력을 이끌고 형주로 남하했던 조조가 교씨 자매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건 작가의 악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조조가 패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이미 중원을 석권했고 형주의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에 큰 손실이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량을 최고의 능력자로, 조조를 악인의 대명사로 만들었기에 소설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얻어 시대를 관통하는 최고의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강한 자를 나쁘게, 상대적으로 약한 이를 선하게 만들어 대중들의 호감을 얻었던 것이다.
칼럼니스트 안계환 작가는
경영과 역사를 접목한 책을 쓰는 작가이며 독서경영 컨설턴트, 직장인 독서모임 독서경영포럼의 대표로 인류문명연구소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독서습관>, <마흔에 배우는 독서지략>, <변화혁신, 역사에서 길을 찾다>, <중국핵심강의>, <삼국지생존법>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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